단상

화폐란 원래 객관적 실체가 없는 것이다.

classc 2026. 2. 26. 08:48

화폐의 가치는 정부나 은행이 아닌, 사람들간 암묵적 '신뢰'에서 비롯된다. 암호화폐가 화폐로서의 객관적 실체가 없다는 사람들은 화폐의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다. 화폐란 원래 객관적 실체가 없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화폐의 역사를 살펴보면 화폐의 가치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었던 원인은 그것을 쓰는 이용자들간의 '신뢰'에서 기인함을 알 수 있다.

아무리 국가에서 화폐를 법정통화로 인정해도 사람들이 그것을 가치 없다고 여기면 1차 세계대전 이후의 독일이나, 짐바브웨 처럼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일어나 화폐가치가 폭락할 수 있다. 반대로 사람들이 어떤 특정한 통화가 가치가 있다고 여기면, 지금의 달러처럼 금과 연동되지 않아도 미국의 막강한 군사력을 기반으로 기축통화로 군림할 수 있는 것이다.

즉 화폐가치의 핵심은 '신용'이지, 다른 게 아니다. 그런 각도에서 생각해보면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가 앞으로 화폐로서 통용되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다.

몇 가지 사례를 간략하게 얘기해보자.


1. 수메르인들이 은을 화폐로 사용한 이유는 은을 성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세계 최초로 화폐를 사용했던 세계 최초의 문명인 수메르는 은본위제 국가였다.

수메르인들은 달이 치수 간만의 차이를 일으킨다는 것을 알아채서 달신 난나를 숭배했다. 치수간만의 차이에 대한 지식은 홍수를 대비하고, 제방을 쌓아 농업을 하는 데 핵심적이었다. 아카드 제국 시기 쯤 되면 엔키나 엔릴 같이 인격화된 신들이 많이 나타나지만, 그 전에 수메르에서는 달의 신 난나 같은 자연신이 대세였다.

그래서 수메르 인들은 달의 색깔과 흡사한 은을 채굴하거나 은을 봉헌물로 받는 식으로 보관을 했다.

은이 성물로 인지되는 만큼,  어느 순간부터 보다 많은 은을 보관한 신전이  다른 신전에 비해 달신에게 더 축복받았다는 이야기가 퍼졌다.

은의 활용도는 도시 국가간 식량 원조에도 활용되었다. 수메르는 도시 국가 체제였는데, 한 국가에서 홍수, 가뭄으로 자연재해를 겪어 식량이 동나면 인접한 이웃 국가에게 식량을 제공받는 대신 언제 돌려받겠다는 보증을 받아야 했다. 초기에는 은을 직접 받는 것이 아니라 창고 은 보관상자나 은괴에 눈금을 매기는 식이었다. 식량을 빌려주면 선한 일을 하였으니 눈금을 올리고, 돌려받으면 눈금을 원위치시키는 것이다.

거래가 아닌 보증이 빈번해지고, 도시국가간 전쟁과 같은 다툼이 일어나면서부터 단순 보증에서 거래로 점차 변화했으며, 대규모 식량 거래를 위한 확실한 방식으로 직접 은을 거래하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은을 기반으로 귀금속의 가치를 매기고, 귀금속을 기반으로 식량을 거래하는 일이 대중들 사이에서도 널리 퍼지게 된다.

그러니까 수메르인들이 은을 최초로 화폐로 사용한 이유는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게 아니다.

고대인들이 금의 화려함을 신성하게 여겼듯이, 수메르인들은 은을 신성하게 여겼을 뿐이다.

 '신용', 즉 화폐에 대한 믿음이 화폐가치 유지의 핵심인 것이다.

2. 은 함량이 줄어들자 로마 화폐는 가치를 상실했고(아무도 로마 화폐를 거래에 쓰지 않았으니까!), 이것이 끝내 로마의 멸망을 불렀다

공화국 시절부터 강해진 국력으로 인해 로마의 귀족들은 경제적 안정을 누릴 수 있었고, 이는 사치문화의 발달로 이어졌다. 이를 잘 표현해주는 현상이 로마인들의 비단에 대한 높은 수요였다.

그 중 가장 높은 인기를 구가하던 비단은 중국으로부터 건너왔다. 중국은 이미 기원전 약 3500년 전부터 비단을 생산하고 있었기 때문에 비단의 품질은 세계 어느 국가보다도 월등하였다. 로마인들의 증국 비단에 대한 수요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사막을 가로질러 중국에서 로마에 이르는 교역로의 이름이 ‘실크로드’인 점을 보더라도 당시 중국 비단에 대한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쉽게 짐작이 간다. 

문제는 비단에 대한 인기가 높아질수록 로마제국 내의 은이 줄어든다는 데에 있었다. 중국은 은본위제 국가였기 때문에 로마는 비단 수입의 대가로 은을 제공했다. 따라서 비단의 인기가 높아지자 유출되는 은의 양은 점차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비단에 대한 로마인들의 관심이 하루아침에 줄어들리 없었다. 오히려 베리우스 황제 시절 비단이 퇴폐 문화를 조장한다고 하여 비단옷 자체를 공식적으로 금하자 비단 무역은 급증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비단 선호는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2세기께는 비단 자체가 화폐처럼 거래에 활용되기도 하였다.
 
결국 로마의 재정은 이를 감당해내지 못하였다. 서기 64년 네로 황제는 일주일간이나 지속되었던 대화재로 인해 도시재건을 위한 재원확보가 시급해지자 화폐개혁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은 함량을 줄이고 값싸고 풍부한 구리를 섞은 은화를 대량으로 유통시켰다. 처음에는 구리의 함량이 적어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 구리의 함량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은의 함량이 감소하여 원래 4.55g이었던 은화가 2.3g까지 줄어들었다. 고대판 평가절하가 이루어진 것이다. 은 1㎏으로 은화 100개를 만들던 것을 110개까지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동일한 은으로 더 많은 화폐를 만들다 보니 가치가 떨어지고 물가가 오르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시작된 로마경제의 악화는 이후 100년간 급격히 진행되었다. 약 3세기 중반에는 은의 함유량이 초기 은화의 5000분의 1까지 떨어져 고철에 불과한 수준까지 추락하였다. 이러한 은화를 그 누구도 거래에 사용하지 않았다. 화폐로서의 가치를 완전히 상실하게 된 것이다. 화폐가치의 하락은 엄청난 물가상승으로 이어졌다.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화폐로 세금을 징수하는 것이 의미가 없어지자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조세를 현물로 받기 시작하였다. 이는 경제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는 계기가 되었다. 시장에서 거래를 위한 생산은 사라지게 되었고, 경제 전체가 자급자족 형태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자급자족 경제에서는 현물 간의 거래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금화나 은화와 같은 화폐는 거의 유통되지 않았기 때문에 군인의 급료도 생필품이나 곡물, 가축 등 현물로 지급되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어렵게 되자 이국땅에 주둔하고 있는 군인들을 국내로 불러들일 수밖에 없었다. 지중해 전역에 걸쳐 있던 로마제국의 쇠퇴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3. 1971년 닉슨 쇼크와 금본위제 붕괴는 화폐 가치의 본질이 신용임을 보여준다; 신용이 무너지면 화폐가치가 폭락하고, 신용이 유지되면 화폐가치도 보전된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1945년, 전세계는 브레튼우즈 협정을 통해 '금1 온스=35달러' 의 등가교환을 외환시장의 규칙을 채택했다.

금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성을 바탕으로 달러를 국제통화로 만들자는 것이다.

그런데 베트남전쟁으로 미국이 지나치게 많은 달러를 증발하자, 미국달러가 기축통화 였던 것이 영 못마땅했던 세력이 달러를 금으로 교환해달라는 요구를 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프랑스의 드골은 1965년 2월 미국 달러를 금으로 교환해달라고 요구했다. 이러한 요구가 빗발치기 시작하자 결국 닉슨은 1971년 달러의 금태환 정지를 선언할 수 밖에 없고, 이로써 금본위제는 막을 내리게 된다.

4. 기축통화란 본디 '실체'가 없는 것으로, 그 나라 국력에 대한 대중적 신뢰를 기반으로 한다

과거 영국이 세계 최강대국이었던 시절 영국 파운드화는 전세계 모든 화폐의 기준이었다.

뉴욕에 100층의 빌딩과 마천루들이 지어지기 시작했던  1930~40 년대에도 미국 달러는 5달러가 1파운드와 교환이 가능했으니 과거 영국의 힘이 얼마나 강했는지 알 수 있다. (현재는 1.6 달러가 1파운드와 교환되고 있다)

1973년 빅터 로스차일드가 영국이 보통 국가가 되었다고 선언하기 이전까지 영국은 세계 최강대국이었다.

1973년, 미국의 록펠러 가문은 헨리 키신저를 통해 사우디와 밀약을 맺어 석유결제를 달러로만 하는 '석유기반 달러 기축통화' 체제를 만든다. 금본위제가 무너졌어도, 미국은 자국의 군사력에 기반하여 미국 달러화를 기축통화가 되게 만든 것이다. 이 때부터 미국은 어떠한 지급보증 수단의 필요성도 없이 달러를 기축통화를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미국의 군사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전세계 각국이 미국 국채를 사고, 미국 달러로 외환시장에서 거래하고, 막대한 외환보유고를 쌓아두고 있을 필요가 없다. 또 한국은행들이 조선업체들과 선물환 계약을 할 때 수주대금을 환헤지하기 위해 외국계 은행으로부터 달러를 차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그로인해 한국의 단기외채가 증가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볼 때,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의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는 투명한 발행과정은 주요 통화로의 발전 가능성 또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5. 현대사회에서 예금의 가치는 은행 시스템에 대한 '신뢰'에 달려 있을 뿐이다

암호화폐는 발권 주체가 없기 때문에 위험하고, 은행에서 찍어낸 돈은 발권 주체가 있으니 신용이 간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현대사회에서 돈의 대부분은 예금이며 이것은 법화가 아니다. 예금의 가치를 뒷받침해주는 것은 흔행이 도산하지 않는다는(도산해도 예금보험제도가 보호해준다는) ‘신뢰’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대형 은행도 리먼 브라더스같이 금융위기에 직면해 파산하게 되면, 예금자의 돈 역시 휴지조각이 되어버릴 수 있다.  
 
유럽의 골드스미스(금세공업자)들로부터 출발한 '지급준비제도' 역시 은행 시스템에 대한 사람들의 맹목적인 신뢰가 얼마나 근거가 없는지를 잘 보여준다. 지급준비제도 체제 하에서 일어난 갑작스런 뱅크런 사태 때문에 파산한 영국왕 찰스 1세나 존 로의 미시시피 거품 붕괴 사건을 참조하길 바란다.

현재 한국은행은 지급준비제도를 이용, 최초 본원통화(정부가 실제로 찍어낸 돈)의 39배나 되는 파생통화(총통화)를 창출하고 있다. 이 돈의 실체는 한마디로 '0'에 불과하다.

그러나 사람들이 계속 은행이 안전하다고 믿고, 뱅크런(대규모 인출사태)을 일으키지 않는 이상,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화폐를 대출해주는 이 허구의 은행시스템은 계속 안전적으로 운용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화폐제도의 핵심은 사람들 간 '신뢰'에서 비롯된다.

6. 중앙은행 없이도 화폐는 몇 천년 동안 잘 굴러갔다; 중앙은행이 화폐의 유통에 꼭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세계 최초의 중앙은행은 1668년 설립된 스웨덴 중앙은행이지만, 영국 영란은행이 1844년에 독점적인 발권은행이 된 이 시기를 실질적인 근대적 중앙은행의 시작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많은 사람들이 정부에서 인정한, 즉 중앙은행이 발권하는 법정통화만이 실체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중앙은행의 실질적인 역사는 인제 채 200년도 안 되었으며, 중앙은행 자체가 화폐의 신뢰성을 유지시키는 것은 아니다.

그전까지는 중앙은행 없이 화폐 제도가 제대로 기능했다.
 
비트코인의 경우 통화량이 이미 정해져 있고 발행주체가 채굴자라는 점에서, 즉 중앙은행이 부재한다는 점에서, 효율적인 통화정책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은 큰 단점이지만, 특정 국가기관의 임의적 조작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반대로 비트코인만의 장점이기도 하므로, 장단점의 비교가 필요하다. 

또한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가 한 나라의 화폐를 대체한다하더라도 또한 지급준비율을 올리는 방식으로 통화승수를 조절할 수 있으므로 완전히 통화정책에서 손을 떼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지금 세계 각국 중앙은행 총재들은 언젠가는 암호화폐를 중앙은행이 매입해야 한다는 생각도 갖고 있다.

7. 가상화폐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선 '실체'가 없는 것이 맞지만, 그것은 사실 은행예금도 마찬가지이다; 결국 계속 강조했듯이, '신용'이 화폐가치의 핵심이다

14세기 이전의 은행은 거리에 테이블을 놓고 의자에 앉아서 하는 포장마차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화폐가 물건에서 정보가 되어 예금 원장을 쓰기 시작했다. 은행 지점에서는 더 이상 화폐를 잔뜩 쌓아두면서 돈거래를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은행업무의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예금대체를 통해 송금하는’ 방식은 현대사회에서 은행을 통하는 송금의 주요 수단이 되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 또는 암호화폐 역시 앞으로 새로운 형태의 화폐로 인정받지 못할 이유가 없다.

신용카드는 이중 사용을 방지하기 위해 한 번 사용된 화폐는 발행자에게 돌려보내는데, 이것은 예금통화의 시점에서보면 이단적 방법이다. 그렇게 보면, 오히려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야말로 중세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예금통화의 정통 계승자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비트코인 ATM 머신도 세계 곳곳에서 등장하고 있으니, 거의 은행예금과 다를 바가 없어졌다.

또 비트코인이 범죄에 악용된다는 비판도 있는데, 사실 전통적인 화폐경제를 갖고 있는 전세계 모든 국가에서 지하경제가 양성화 된 상태이므로 비단 비트코인의 문제라고만 할 수도 없다.
 
암호화폐에 대한 사람들 사이의 '믿음, 또는 '신용'이 유지될 수만 있다면 암호화폐에 대한 수요는 계속 있을 것이고, 그 가치 역시 계속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사람들 사이의 믿음이나 신용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기술이 기업과 정부간 거래에 광범위하게 쓰일 것이라는 공감대가 광범위하게 형성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뒤따른다.